문학35 우편국에서 - 현진건 연 진체 구좌저금(年振替口座貯金)을 난 생전 처음으로 찾아본 이야기이다. 물론 진출입(振出入)은 애가 아니다. 부끄러운 말이나, ○○잡지사에서 원고료 중으로 돈 십 원을 주는데, 그것이나마 현금이 없다고 그 어음 조각을 받게 된 것이다. 주머니에 쇠천 샐 닢도 없어서 쩔쩔매던 판이니 그것이나마 어떻게 고마웠던지 몰랐다. 무슨 살 일이나 생긴 듯이 지정한 광화문국(光化門局)으로 내달았다. 상식이 넉넉지 못한 나는 이것도 보통 위체금(普通爲替金) 찾던 표만 떨어뜨리면 될 줄 알았다. "여보, 수취인의 이름을 써야 하지 않소?" 까무잡잡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팔자 수염을 거슬린 사무원이 나의 들이민 그 표를 한번 뒤집어보더니 꾸짖는 듯이 말을 하였다. "네 그렇습니까!" 하고 나는 내 이름 아닌 ×××이란 .. 2023. 6. 13. 문학과 정치 - 이상 문학자는 그 생활하는 성격상 생활이 다른 어떤 종류의 부문의 생활양식에 비교하여도 정신적인 고뇌가 훨씬 더 많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이래서 그들은 생활의 물질적인 고뇌에 다른 어떤 부문의 누구보다도 강인한 인내력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만약 한 문학자가 생활 혹은 그것에 유사한 보통 원인으로 하야 그 자신의 일명을 스스로 끊었다면 이 비극성이야말로 절대하다. 문학자가 문학해 놓은 문학이 상품화하고 상품화하는 그런 조직이 문학자의 생활의 직접의 보장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대라는 정세가 이러면서도 문학자ㅡ가장 유능한ㅡ의 양심을 건드리지 않아도 꺼림칙한 일은 조금도 없는 그런 적절한 시대는 불행히도 아직 아닌가 보다. 이런 데서 문학자와 그의 생활 사이에 수습.. 2023. 6. 13. 피아노 - 현진건 궐은 가정의 단란에 흠씬 심신을 잠기게 되었다. 보기만 하여도 지긋지긋한 형식상의 아내가 궐이 일본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불의에 죽고 말았다. 궐은 중등 교육을 마치 어여쁜 처녀와 신식 결혼을 하였다. 새 아내는 비스듬히 기른 머리와 가벼이 옮기는 구두 신은 발만으로도 궐에게 만족을 주고 남았다. 게다가 그 날씬날씬한 허리와 언제든지 생글생글 웃는 듯한 눈매를 바라볼 때에 궐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살아서 산 보람이 있었다. 부모의 덕택으로 궐은 날 때부터 수만 원 재산의 소유자였다. 수년전 부친이 별세하시자 무서운 친군의 압박과 구속을 벗어난 궐은 인제 맏형으로부터 제 모가치를 타게도 되었다. 새 아내의 따뜻한 사랑을 알뜰살뜰히 향락하기 위함에 번루 많고 방해 많은 고향××부를 떠난 궐은 .. 2023. 6. 13. 같잖은 소설로 문제 - 현진건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8, 9년 전에 어떤 신문사에 있을 때에 필자의 이름도 잘 모르고 내용도 그리 변변치 못한 어떤 서양 소설을 하나 번역하여 이란 제(題)로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그 뒤에 동명사(東明社)에 있을 때에 나에게 고맙게 하는 친구 한 분이 모 서점에서 그것을 소개하여 일금 3백원야(也)의 원고료를 받고 팔게 하였었다. 그 서점에서는 그것을 로 게제하여 출판하였었는데 그것으로 이익을 보았는지 손해를 보았는지 그는 알 수 없으나 제1회 출판을 하고는 아모 소식도 없더니 요 얼마 전에 그 서점에서는 나에게 하등의 말도 없이 다른 서점으로 판권을 전매하고 그 서점에서는 다시 제목을 고쳐서 이라 하고 출판하여 신문상으로 또는 삐라로 염치 좋게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저(著)라 하고 굉장하게 선.. 2023. 6. 13. 슬픈 이야기 - 이상 (1937. 6.) ― 어떤 두 주일 동안 거기는 참 오래간만에 가본 것입니다. 누가 거기를 가보라고 그랬나 모릅니다. 퍽 변했습디다. 그전에 사생(寫生)하던 다리 아치가 모색(暮色) 속에 여전하고 시냇물도 그 밑을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양 언덕은 잘 다듬어서 중간중간 연못처럼 물이 괴었고 자그마한 섬들이 아주 세간처럼 조촐하게 놓여 있습니다. 거기서 시냇물을 따라 좀 올라가면 졸업기념으로 사진을 찍던 나무 다리가 있습니다. 그 시절 동무들은 다 뿔뿔이 헤어져서 지금은 안부조차 모릅니다.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고 의자처럼 생긴 어느 나무 토막에 앉아서 물속으로도 황혼이 오나 안 오나 들여다보고 앉았습니다. 잎새도 다 떨어진 나무들이 거꾸로 물속에 비쳤습니다. 또 전신주도 비쳤습니다. 물은 그런 틈바구니로 잘 빠져서 흐.. 2023. 6. 13. 나의 유년시절 - 강경애 5세에 아버지를 여읜 나는 일곱 살에 고향인 송화를 등지고 장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생계가 곤란하시므로 더구나 장차 의지할 아들도 없고 다만 딸자식인 나를 믿고 언제까지나 살아가실 수 없는 고로 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의붓아버지에게는 남매가 있었으니 남아는 16, 7세 가량이었으며 계집애는 내 한 살 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 지 이틀도 지나기 전에 벌써 우리들은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속상하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의붓아버지까지라도 적지 않게 실망을 하여 나중에는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까지 한 기억이 아직껏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싸움을 하고 울 때마다 어머니는 너무 속상해서 우시면서, “경애야 너 싸우지 마라. 너 정말 늘 그러면 난 .. 2023. 6. 13.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