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문학과 정치 - 이상

by 시애틀 2023. 6. 13.

문학자는 그 생활하는 성격상 생활이 다른 어떤 종류의 부문의 생활양식에 비교하여도 정신적인 고뇌가 훨씬 더 많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이래서 그들은 생활의 물질적인 고뇌에 다른 어떤 부문의 누구보다도 강인한 인내력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만약 한 문학자가 생활 혹은 그것에 유사한 보통 원인으로 하야 그 자신의 일명을 스스로 끊었다면 이 비극성이야말로 절대하다.

문학자가 문학해 놓은 문학이 상품화하고 상품화하는 그런 조직이 문학자의 생활의 직접의 보장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대라는 정세가 이러면서도 문학자ㅡ가장 유능한ㅡ의 양심을 건드리지 않아도 꺼림칙한 일은 조금도 없는 그런 적절한 시대는 불행히도 아직 아닌가 보다.

이런 데서 문학자와 그의 생활 사이에 수습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기고 모순으로 하여 위와 같은 끔찍끔찍한 비극도 일어난다.

보면 사회, 아니 문학 한다는 이들까지가 이 비극에 대하기를 '냉담' 한마디에 다한다는 것은 한심하고 참괴 참아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생활난 때문에 일가 구몰의 보도를 조석으로 듣고 상을 찌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세월에 하나 정신 패배자의 죽음쯤이야 사회적 현상으로 내려다볼 때에 혹은 너무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르나 그 패배의 모양이 정신적인 점, 우리 문학하는 사람들과 친근자인 경우에 좀 더 절실한 무엇이 우리 흉리에 절박하는 것을 아니 느끼고 족히 배길까.

 

누구나 현실에 있고 현실을 가진다. 밤이나 낮이나 이것만 떠벌리고 자랑거리로까지 하는 어떤 일군에 한한 일이 아니다.

두뇌 노동자를 유익하게 이용한다는 것은 무슨, 문학자를 가져다가 바로 그냥 정치가를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리라.

정치라는 힘이 참 큰 것을 안다. 그것이 젊은 우리 제너레이션 살에 숨어서 절절하거니와 그렇다고 펜과 원고지를 내던지며 제 풀에 정치가가 되는 줄 알았다가는 잘못이 있다.

문학이 남아 일생의 업으로 삼기에 좀 흡족하지 못하다고 보는 눈을 아주 책망할 수 있지나 말거나 펜과 원고지를 버리는 일로 정치로 달리는 문학자는 우습다.

정치인들 이따위 헐렁(?)이를 환영할 까닭이 있을 리 만무다.

문학자가 정치에 참견한다거나 정치를 선행시키는 문학 운동들이 범한 오류의 이론이 뭐 적확히 지적되었다고 할 수는 아직 없겠지, 그러나 정치가 목적으로 삼아지는 문학을 문학의 제일의로 여기는 우리의 습관이 제법 안 유행하게 되어 가는 감이 있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우리라.

이것은 즉 얼마 안 되지만 그런 경험 뒤에 차차 제각각 제 길로 들어서는구나 하고 보아도 관계치 않을 것이다.

하여간 정치와 문학을 그 경중을 측정하기 위하여 동시에 동일한 천칭에 올려놓을 성질의 것이 못 되는 것은 정치도 문학도 같이 이것을 확인할 것이다.

문학자가 제 문학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제 생활을 기피하였다는 당대의 비극이 있다.

흔히 있는 또 있어야 할 유서 한 장 없으니 더 슬프다.

고 매운 눈초리를 나는 눈에 선ㅡ허니 잊을 수도 없었다.

 

누구나 쉽사리, 내 '악취미 지극'을 지적할 수 있으리라. 내가 간망하는 바도 거기 있다.

문학도 결국은 투기사업일 것이다. 되든지 안 되든지 둘 중의 하나, 이 냄새나는 악취미 지극을 나는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고 어디까지든지 버틸 결심이다.

그러나 또 불원간에 나와 똑같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독자'는 이런 맹랑한 '포즈'를 의외에도 '교언영색지격'이라는 것을 간파할 줄 믿는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독자를 조소하는 실례를 포기치는 아니하리라ㅡ. 아니, 대체 나 이상에게 독자라는 것이 야구단 하나 조직할 만큼이나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