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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5

[전문] 죄와 벌 (어떤 사형수의 이야기) - 김동인 작품소개 연회 후, 2차 모임에서 한명의 퇴직한 판사에게 다들 퇴직 이유를 묻는다. 판사는 쉬고 싶어 사직했다고 하지만 그에게도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판사를 할 때 어떤 사형수와 관련이 있었는데... “내가 판사를 시작한 이유 말씀이야요? 나이도 늙고 인젠 좀 편안히 쉬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사직했지요, 네? 무슨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글쎄, 있을까. 있으면 있기도 하고, 없다면 없고, 그렇지요. 이야기 해보라고요? 자, 할 만한 이야기도 없는데요.” 어떤 날 저녁, 어떤 연회의 끝에 친한 사람 몇 사람끼리 제2차 회로 모였을 때에, 말말끝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그 전 판사는 몇 번을 더 사양해본 뒤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사법관이지 입법관이 아니.. 2021. 4. 7.
[전문] 미스터 방 - 채만식 주인과 나그네가 한 가지로 술이 거나하니 취하였다. 주인은 미스터 방(方), 나그네는 주인의 고향 사람 백(白)주사.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 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만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내 참, 뭐, 흰말이 아니라 참, 거칠 것 없어, 거칠 것. 흥, 어느 눔이 아, 어느 눔이 날 뭐라구 허며, 날 괄시헐 눔이 어딨어, 지끔 이 천지에. 흥 참, 어림없지, 어림없어." 누가 옆에서 저를 무어라고를 하며 괄시를 한단 말인지, 공연히 연방 그 툭 나온 눈방울을 부리부리, 왼편으로 삼십도는 넉넉 삐뚤어진 코를 벌씸벌씸 해가면서 그래 쌓는 것이었었다. "내 참, 이래봬두, 응, .. 2021. 4. 5.
기생집 문 앞에서 맴돌이하던 이야기 - 채만식 K와 S는 다같이 술이 얼큰히 취하였다. 그들이 T관 문 앞에서 불러 놀던 기생 H에게 “안녕히 주무세요” 하는 인사를 받고 길거리로 나선 때는 자정이 벌써 지났다. 두 사람은 다 남북으로 갈리었다. ── K는 이문(里門)안으로 S는 종로편으로. 갈리면서 서로 다정하게 인사를 하였다. “잘 가게.” “응, 잘 가게.” “웬만하면 택시라도 타지!” “아니 괜찮아…… 뭘 내가 취한 줄 아나?” “취하지야 아니했겠지만 어찌 마음이 놓이질 않는걸……” “내 걱정은 말고 차라리 자네가 타고 갈 도리를 해야 하겠네.” “아니 괜찮아.” “자, 그러면.” “응, 그러면 내일 구락부에서 만나세.” 이리하여 두 사람은 갈라섰다. K는 외투깃을 세워 목을 푹 파묻고 어두컴컴한 이문안길을 빠져 사동(寺洞)의 큰거리로 나섰다.. 2021. 4. 5.
[전문] 술 권하는 사회 - 현진건 작품소개 1921년 《개벽(開闢)》 17호에 발표되었다. 작가의 신변을 다룬 초기 소설로서 일제의 탄압하에서 많은 애국적 지성들이 어쩔 수 없이 절망하고 술을 벗삼게 되어 주정꾼으로 전락하는데, 그 책임은 바로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자백한다. 새벽 2시에 대취하여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누가 이렇게 술을 권했느냐고 안타까워한다. 남편은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는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남편은 "아아 답답해!" 하며 또다시 밖으로 나간다. 아내는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원망하며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하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에서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한 지식인의 불안을 그린 리얼리즘 소설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술 권하는 사회 [─勸─社會] (두산백과.. 2021. 4. 3.
[전문]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작품소개 1934년 《신동아》지(誌)에 발표. 1933년까지 이 작가가 발표한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단편 《화물자동차》 《인형의 집을 나와서》 등 일련의 작품은 프로문학에 대한 동반자적 입장에서 쓴 것이었으나, 《레디메이드 인생》과 《치숙(痴叔)》 등에서는 당시의 한국 지식인의 운명과 그 곤경을 제재로 삼으면서 풍자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경제공황기에 실직 중인 P는 이력서를 들고 이곳 저곳 찾아 다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나서 자신이 인텔리인 것을 원망, 책을 잡혀 친구들과 선술집 · 카페 · 색주가로 돌아다니며 실업자의 울분을 터뜨린다. 아들만은 자신과 같은 인텔리 실직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보통학교도 안 마친 애를 잘 아는 인쇄소에 맡기고 돌아오면서 “레디메이드(기성.. 2021. 4. 3.
B사감과 러브레터 - 현진건 C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여사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야소군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죽은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훨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법대로 쪽찌거나 틀어올리지를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어넘긴 머리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여사가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소위 '러브레터'였다. 여학교 기숙사라면 으례.. 2021.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