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8, 9년 전에 어떤 신문사에 있을 때에 필자의 이름도 잘 모르고 내용도 그리 변변치 못한 어떤 서양 소설을 하나 번역하여 <백발(白髮)>이란 제(題)로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그 뒤에 동명사(東明社)에 있을 때에 나에게 고맙게 하는 친구 한 분이 모 서점에서 그것을 소개하여 일금 3백원야(也)의 원고료를 받고 팔게 하였었다.
그 서점에서는 그것을 <악마와 같이>로 게제하여 출판하였었는데 그것으로 이익을 보았는지 손해를 보았는지 그는 알 수 없으나 제1회 출판을 하고는 아모 소식도 없더니 요 얼마 전에 그 서점에서는 나에게 하등의 말도 없이 다른 서점으로 판권을 전매하고 그 서점에서는 다시 제목을 고쳐서 <재활(再活)>이라 하고 출판하여 신문상으로 또는 삐라로 염치 좋게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저(著)라 하고 굉장하게 선전을 하였었다.
나도 처음에는 어쩐 까닭인지 영문도 알지 못하여 깜짝 놀래고 친구들도 나더러 소설을 새로 출판하였으니 책을 한 권 주어야 하느니 술을 한 턱 내야 하느니 하고 졸랐었다. 급기야 알고 보니 케케묵은 예전 그것을 다시 개제 출판하여 가지고 사람을 곤란케 하였다.
내가 소설을 더러 써 보았지마는 정작 힘들여 쓰고 내용도 관계치 않은 것은 원고료도 몇 푼 받지 못하고 또 아모 문제도 없었지마는 이 <백발>은 내용도 별것이 없는 꼴같잖은 소설로서 원고료도 여러 작품 중에 제일 많이 받고 이리저리 팔려 가기도 잘하고 제목의 변경도 잘하는 까닭에 나에게 성가심도 많이 주어 그야말로 <백발>이 원수의 백발이야 하는 소리를 발하게 되었었다.
이번에도 내가 그저 눈을 슬쩍 감았기에 그렇지, 만일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재활>이 재활될지 재사(再死)될지 알 수도 없고, 술값이라도 주머니 속으로 몇 푼 들어왔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도부일소(都付一笑)할 뿐이었다. 이것이 나의 소설 쓴 것 중 제일 말썽거리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