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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8

[전문] 할머니의 죽음 - 현진건 '조모주 병환 위독' 삼월 그믐날, 나는 이런 전보를 받았다. 이는 ××에 있는 생가(生家)에서 놓은 것이니 물론 생가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하단 말이다. 병환이 위독은 하다 해도 기실 모나게 무슨 병이 있는게 아니다. 벌써 여든 둘이나 넘은 그 할머니는 작년 봄부터 시름시름 기운이 쇠진해서 가끔 가물가물하기 때문에 그 동안 자손들로 하여금 한두 번 아니게 바쁜 걸음을 치게 하였다. 그 할머니의 오 년 맏이인 양조모(養祖母)는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고……이승에서는 다시 못 보겠다. 동서라도 의로 말하면 친형제나 다름이 없었다…… 육십 년을 하루같이 어디 뜻 한번 거슬러 보았을까……."연해 연방 이런 넋두리를 섞어가며 양조모는 울었다. 운다하여도 눈가장자리가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릴 뿐이었다. 워낙 .. 2021. 4. 1.
[전문]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장이를 동광학교(東光學校)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 첫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 첨지는 십 전짜리 백통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 2021.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