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매미 놀림은 역시 아침결보다 저녁결이 제 시절이다. 학교로 갈 때보다는 올 때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아침에는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내빼던 놈들이, 돌아올 때면 그적에야 아주 제 세상인 듯이 발들을 콱 붙이고 돌라 붙는다. 오늘도 돈 천 원이나 사 놓게 된 것은 역시 오후 네 시가 지나서부터다.
지금도 어울려오던 한 패가 새로이 쭈욱 몰려들자, 물매미를 물에 띄운 양철 자배기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칸을 무수히 두고, 칸마다 번호를 써 넣은 그 번호와 꼭같은 번호를 역시 1에서 20까지 쭉 일렬로 건너쓴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놓았던 미루꾸 갑을 집어들고,
“자, 과잔 과자대루 사서 먹구두, 잘만 대서 나오면 미루꾸나, 호각이나, 건, 소청대루 그저 가져가게 된다. 자, 누구든지.”
하고 노인은 미루꾸 갑을 도로 놓고 조리를 들어 물매미를 건져서 자배기 한복판에 굵다란 철사로 둥글하게 휘여, 공중 달아 놓은 그 동그라미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동그라미를 통하여 물 위에 떨어진 물매미는 물속을 버지럭버지럭 헤어 돌더니, 4자 번호 칸으로 들어간다.
“자, 보았지? 4자에다 미루꾸를 대고 이렇게 되면 미루꾸를 가져가게 되는 판이다. 자, 누구든지.”
하고 아이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지 않아도 구미가 동하여 한쪽 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오물거리던 한 아이가 자배기 앞으로 바싹 나서며 란드셀을 멘 채 쪼그리고 앉더니, 십 원짜리 한 장을 밀어 내놓는다.
노인은 내놓은 십 원짜리를 무릎 앞으로 당기어 놓고, 종이 봉지 속에 손을 쓱 넣었다가 내더니,
“자, 받어. 이렇게 과자는 과자대루 주구…….”
하고, 콩알만큼이나 한, 가시가 뾰족뾰족 돋은 알락달락한 색과자 세 알을 소년의 손으로 건넨다.
소년은 과자를 받아 우선 한 알은 입에 넣고, 미루꾸 갑을 당기어 8번에 다 대이고 조리를 들어 물매미를 떠서 동그라미 속에 몰아넣었다.
물 위에 공중 떨어진 물매미는 잠겼다 솟았다 수염을 내저으며 뒷다리를 버지럭버지럭 헤어 돌아간다. 8자 주변 가까이로 물매미의 수염이 키를 돌릴 때마다 소년의 가슴은 호둑호둑 뛰었다. 그 은근하게 마음이 졸였던 것이다.
그러나, 허사였다. 물매미는 7자 칸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소년은 약이 오르는 듯이 십 원짜리를 또 꺼내 이번엔 7자 번에다 대었다. 그러나, 물매미는 이번엔 또 8번으로 들어갔다. 몇 번을 대 보았어도 물매미는 미루꾸 대인 번호로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백 원짜리까지 한 장을 잃고 난 소년은 인제 밑천이 진한 듯이 얼굴이 빨개서 물러난다. 노인은 좀 미안한 듯이,
“한 번 맞춰내진 못했어두 손해난 건 없지? 과잔 과자대루 돈 값에 받았으니까. 자, 또 누구?”
하고, 아이들을 또 한 번 건너다보았다.
“저요!”
한 아이가 또 들어섰다.
그러나, 역시 물매미는 미루꾸 대인 숫자로는 좀체 들어가지 않았다. 백 원짜리 석 장이 고스란히 나가기까지 겨우 한 번을 맞추었을 뿐이다.
“요 깍쟁이 자식이!”
소년은 약이 바짝 올라서 물매미 욕을 하며, 백 원짜리 한 장을 또 꺼내, 이번에는 아무래도 한 번 맞추고야 말겠다는 듯이, 모두 스무 구멍에서 절반이나 차지하는 열 구멍에다 번호를 골라 지적하고, 그 백 원을 단태에 다 대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물매미를 떠넣었다. 여기엔 장본인인 소년 자신뿐이 아니라, 둘러섰던 아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마음이 조였다.
동그라미를 통하여 물 위에 떨어진 물매미가 지적하여 놓은 그 번호 가까이로 헤어돌 때마다, 흠칠흠칠 마음들을 놀랬다. 그러나 물매미는 요번에도 들어갈 듯이 그 지적한 번호의 주변을 몇 번이고 돌았을 뿐, 나중 가선 엉뚱한 구멍에 수염을 쳐박고 넙주룩이 뜨고 만다.
소년은 그게 마지막 태였다. 더는 밑천이 없다. 그만 울상이 되어 일어선다.
“고놈의 짐승 참 이상하게두 오늘은 미루꾸 대인 구멍으룬 안 들어가 네.”
노인은 너무도 돈을 많이 잃은 소년이 딱해 보여서 위로 삼아 해 본 말이었으나, 소년은 이 말에 도리어 부아가 돋귀었다. 킹 하더니 손잔등이 눈으로 올라간다.
노인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노름에 돈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는 아이를 오늘 비로소 대한 게 아니다. 날마다 한둘씩은 으레 있는 일이었고, 그럴 때마다 노인은 자기의 직업이 한없이 미워졌던 것이다. 머리에다 흰 물을 잔뜩 들여가지고 손자 뻘이나 되는 어린 학생들의 코 묻은 돈푼을 옭아내자고 물매미 노름을 시켜, 울려 보낸다는 것은 확실히 향기롭지 못한 노릇이었다. 무슨 직업이야 못 가져서 하필 이런 노릇으로 밥을 먹어야만 되는 것일까? 자기 자식도 그들과 꼭 같은 어린것이 학교엘 가고 있다.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가르쳐 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꼬여서 옭아 먹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밥을 굶어두…….’
하고 금시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정말?’
하고, 다시 따져 볼 땐 그만 용기가 죽곤 했다. 밤도 구워 보고, 고구마도 구워 보고, 빵도 쪄 보고, 담배도 팔아 보고, 갖은 짓을 다 해보았어도 시원치가 않아서, 또 이런 노름으로 직업을 아니 바꾸어 볼 수 없었던 것을, 그리고 그래도 이 노름이 제법 쌀됫박이나마 마련되는 노름인 것이 뒤미처 생각킬 때, 노인은 마음을 냉정하게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지껏 내지 못하고 밀려 돌아가던 학교 증축비 부담액 이천 원을 오늘 아침에야 들려 보낸 것도, 이 노름이 시작되면서 이 며칠 동안에 마련된 돈이었다. 생각하면 그저 냉정해야 살 것 같았다. 냉정하자, 그저 냉정해야 되겠다. 지금도 생각하다가 노인은 금시 마음을 다시 새려먹고, 그 소년이야 돈을 잃고 울며 돌아가든 마든 아랑곳할 게 없다는 듯이 소년에게 향하였던 눈을 다시금 물매미 자배기로 돌렸다. 그리고 마음을 굳세게 가다듬는 듯이 에헴 하고 목청을 새롭게 돋우며,
“자, 또 누구? 과잔 과자대루 십 원어칠 받구두, 재수만 좋으면 백 원짜리 미루꾸 한 갑을 공으로 얻게 되는 재미나는 노름! 자, 또 누구?”
하고 그들의 비위를 돋구기 위하여 물매미를 또 떠서 동그라미 속으로 넣어 보인다.
그러나, 아이들은 인제 다들 말꼼히 마주 건너다보기만 하는 패들일 뿐, 썩 나앉는 아이가 없다. 호주머니들이 꿇은 모양이다. 호주머니 꿇은 아이들을 상대로는 아무리 떠든댔자, 나올 것이 없을 건 빤한 일이다. 날도 저 물었다. 벌써 해그림자가 땅 위에서 다 말려들었다.
학교패들도 이젠 다들 저 갈 데로 헤어져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벌려 놓고 그냥 앉았댔자, 집으로 돌아가는 지게꾼이나 장난바치 아이들이 어쩌다 걸려들면 들을 것밖에 없었다. 두어 번 더 아이들을 구겨 보다가, 노인은 그만 짐을 싸 가지고 일어섰다.
집에서는 마누라가 벌써 저녁을 지어 놓고 영감님과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가 돌아올 학교 시간은 이미 늦었는데, 웬 까닭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도 막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하여 노인은 학교로 가 물어보았다. 숙직선생은 아이들이 돌아간 지는 이미 오랬다고 하고, 몇 학년이냐고 묻기에 이학년이라고 했더니, 최영돈이 그 애는 오늘 결석이라고 했다.
노인의 머릿속에는 무슨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전차가 보였다. 자동차가 보였다.
“분명히 개가 오늘 오지 않았어요?”
미안쩍어 노인은 다시 한 번 재쳐 물었으나,
“제가 최영돈이 반 담임이 돼서 오구 안 오는 걸 잘 압니다. 글쎄 한 번두 결석이 없던 앤데, 오늘 처음으로 결석이기에 나도 이상히 여기구 있습니다. 그럼 집에서는 영돈이가 학교로 간다구 나오기는 했군요?”
하고, 평상시의 출석상황까지 정확히 알고 말하는 선생의 대답을 들으면, 영돈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던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서 종일토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전차, 자동차,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오늘 학교 부담금 이천 원을 넣고 나간 그 돈으로 관련되어, 무슨 일이 혹 생긴 것은 아닐까, 노인은 알 수 없는 생각을 안은 채 눈이 둥글해서 되돌아왔다.
밤이 이슥해서다. 문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내다보았더니, 군밤 장수 권서방이 영돈이를 데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아아니,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니? 아, 권서방은 어떻게 또…….”
노인은 돌아오는 막내를 보고 반가워 마주나갔다.
“허, 너 인제 들어가거라. 그런데 영감님, 영돈일 너무 꾸짖지 맙시오.
애들이 철이 없어 그랬겠으니 차후일랑 그러지 말라구 이르구…… 어서 너 들어가 아 -.”
하고, 권서방은 막내의 등을 안으로 밀었다.
역시 까닭은 있었구나, 노인은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니, 너 어딜 갔더랬어? 아, 권서방이 어떻게 밤늦게 걜 데리구……
아니, 어디서 권 서방이 걜…….”
하고 노인은 부썩 마주섰다.
“아니 뭐 그런 게 아니구요. 아마 영돈이가 아침에 학교에 갈 때. 저어 종점께서 물매미 노름을 했나 보죠. 그래, 돈을 잃군 학교두 안 가구 우리 놈하구 우리 집으로 밀려들어와선 종일 놀구 있기에, 저녁이나 먹군 집으루 가 자랬더니 아버지한테 꾸중을 듣겠다구 못 가겠다기에 내가 데리구 왔죠.
뭐 꾸짖을 것도 없어요. 아이들에게 물매미 노름을 시키는 어른이 글렀지요. 그까짓 철없는 애들이야 그거 뭐 아나요. 어서 들어가 자거라!”
노인은 그만 더 추궁할 용기가 없었다. 권서방 보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얼굴이 들리지 않았다.
“어서 들어가 주무십시오. 너두 들어가 자구…… 아이, 참 달두 밝다.
전등이 없으니깐 더 밝은 것 같군.”
돌아서는 권서방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을 뿐 뭐라고 인사말도 나오지 않았다.
말도 없이 그대로 마당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늙은 아버지와 어린 자식을 흐르는 달빛만이 유난히 어루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