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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5

[전문] 미스터 방 - 채만식 주인과 나그네가 한 가지로 술이 거나하니 취하였다. 주인은 미스터 방(方), 나그네는 주인의 고향 사람 백(白)주사.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 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만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내 참, 뭐, 흰말이 아니라 참, 거칠 것 없어, 거칠 것. 흥, 어느 눔이 아, 어느 눔이 날 뭐라구 허며, 날 괄시헐 눔이 어딨어, 지끔 이 천지에. 흥 참, 어림없지, 어림없어." 누가 옆에서 저를 무어라고를 하며 괄시를 한단 말인지, 공연히 연방 그 툭 나온 눈방울을 부리부리, 왼편으로 삼십도는 넉넉 삐뚤어진 코를 벌씸벌씸 해가면서 그래 쌓는 것이었었다. "내 참, 이래봬두, 응, .. 2021. 4. 5.
기생집 문 앞에서 맴돌이하던 이야기 - 채만식 K와 S는 다같이 술이 얼큰히 취하였다. 그들이 T관 문 앞에서 불러 놀던 기생 H에게 “안녕히 주무세요” 하는 인사를 받고 길거리로 나선 때는 자정이 벌써 지났다. 두 사람은 다 남북으로 갈리었다. ── K는 이문(里門)안으로 S는 종로편으로. 갈리면서 서로 다정하게 인사를 하였다. “잘 가게.” “응, 잘 가게.” “웬만하면 택시라도 타지!” “아니 괜찮아…… 뭘 내가 취한 줄 아나?” “취하지야 아니했겠지만 어찌 마음이 놓이질 않는걸……” “내 걱정은 말고 차라리 자네가 타고 갈 도리를 해야 하겠네.” “아니 괜찮아.” “자, 그러면.” “응, 그러면 내일 구락부에서 만나세.” 이리하여 두 사람은 갈라섰다. K는 외투깃을 세워 목을 푹 파묻고 어두컴컴한 이문안길을 빠져 사동(寺洞)의 큰거리로 나섰다.. 2021. 4. 5.
[전문]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작품소개 1934년 《신동아》지(誌)에 발표. 1933년까지 이 작가가 발표한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단편 《화물자동차》 《인형의 집을 나와서》 등 일련의 작품은 프로문학에 대한 동반자적 입장에서 쓴 것이었으나, 《레디메이드 인생》과 《치숙(痴叔)》 등에서는 당시의 한국 지식인의 운명과 그 곤경을 제재로 삼으면서 풍자성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경제공황기에 실직 중인 P는 이력서를 들고 이곳 저곳 찾아 다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나서 자신이 인텔리인 것을 원망, 책을 잡혀 친구들과 선술집 · 카페 · 색주가로 돌아다니며 실업자의 울분을 터뜨린다. 아들만은 자신과 같은 인텔리 실직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보통학교도 안 마친 애를 잘 아는 인쇄소에 맡기고 돌아오면서 “레디메이드(기성.. 2021. 4. 3.
[전문] 치숙 - 채만식 작품소개 채만식(蔡萬植)이 지은 단편소설. 1938년 3월 7일부터 14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레디 메이드 인생>·<명일>·<소망>·<패배자의 무덤>·<냉동어> 등 일련의 작품들과 아울러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수난과 현실에 대응하는 양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姑母夫) 그 양반……. 뭐, 말도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쎄…… 내 원! 신세 간데없지요. 자, 십 년 적공,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 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前科者)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 2021. 4. 3.
[전문] 이상한 선생님 - 채만식 작품 소개 일제시대 당시, 권력에 아부한 박선생과 소극적으로 반항하는 주인공 강선생을 통해 채만식 본인의 친일 행위를 반성하는 자서전적 소설임.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하는 등 일제의 탄압이 심했고, 해방된 후에는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간섭이 시작되었다. ‘이상한 선생님’은 그 당시 상황을 어린아이인 ‘나’의 시선으로 그린 소설이다. 1 우리 박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박선생님은 생긴 것부터가 무척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었다. 키가 한 뼘밖에 안 되는 박선생님이라서, 뼘생 또는 뼘박이라는 별명이 있는 것처럼, 박선생님의 키는, 키 작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난히 작은 키였다. 일본 정치 때, 혈서로 지원병을 지원했다 체격검사에 키가 제 척.. 2021.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