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일기에서 새벽 네 시 ─ 소스라쳐서 뒤숭숭한 꿈을 깨었다. 눈을 멀거니 뜨고 늘어 졌으려니까 갖은 환상이 스러진 꿈의 꼬리를 붙들고 천정에다가 가지각색의 파문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동안에 동이 트고 날이 새었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콩쥐팥쥐’ 이야기를 듣던 때나, 금시로 대통령이 되고 내일쯤은 대문호가 될 듯이 믿어지던 소년시대에 꾸던 꿈과 그려보던 주착없는 공상이 피곤한 머리 속을 휘저어놓을 때가 많다.
가슴과 다리에 네 군데나 수술을 받고 ‘미이라’ 모양으로 반듯이 누워 호흡만 겨우 할딱할딱 할 때에는 동공이 광선과 마주치기만 해도 신경이 항분(亢奮)해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이름 지을 수 없는 희멀건 그 무엇만이 나의 전부를 차지할 적이 있다. 그것은 제법 무슨 훌륭한 유토피아를 그려보는 것도 아니요, 불길이 활활 붙어 오르는 가슴 속에다가 불시에 냉수를 끼얹고는 눈물과 정열을 아울러 빼앗은 뒤에 영영 내 마음을 떠나가버린, 옛날에 소위 애인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애매한 죽음을 한 소녀의 원혼 모양으로 옛 보금자리로 기어들어 ‘지넉이 새남’을 한바탕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지를 뒤덮은 하늘가에 현란한 색채만이 아물어거리다가는 꺼지고, 가로질렀다가는 세로 얼크러져서 무생물도 그 형체를 드러내지 못했던 원시시대의 공백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한 그림자만 어른거리는 일종의 환영이요 환상이었다. 그럴 때에는 눈을 떴건만 사람이 보이지 않고 아무런 음향이 와도 부딪치지를 않는다.
입원을 한지 만 삼 개월이 거의 되어가는 오늘까지도 간신히 병마의 손에 뒷덜미를 잡혀가지는 않았지만 몸이 조금씩 자유롭게 추슬러짐을 따라 환상이 변하여 공상으로, 갖은 몽상, 명상, 망상이 차츰 범위를 넓혀서 그것을 식량 삼고 늦은 봄부터 입추 가까운 오늘까지 이 몽유병환자는 생명을 부지해 온 것이다.
아침 열 시 ─ 오늘은 심을 갈아 박기에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꽁무니와 넓적다리에는 ‘요도호름제’가 약 세 치 길이나 들어간다. 언제나 새 살이 솟아 나올는지? 요새는 제 정신이 돌아오니까 병이 더 지루한 것 같고 날은 사뭇 푹푹 삶는데 생으로 짜증만 더럭더럭 난다.
‘병구유선정전구(病久唯羨庭前狗)’라더니 갑갑증이 치밀어서 툇마루 끝으로 엉금엉금 기어나가 쭈그리고 앉았으려니까 하얀 토끼란 놈이 두 귀를 쫑긋거리며 앞 마당의 새파란 풀잎사귀를 냠냠거리며 뜯다가 제 동무끼리 머리를 한데 모우고 짧은 앞다리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이 무척 귀엽기도 하고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완쾌해져서 마음대로 휘적거리고 돌아다닌다 해도 쥐뿔만큼도 시원한 꼬락서니를 볼 것이 있을 리 없고 일순간이라도 마음 속으로 웃어볼일이 없을 줄 번연히 알건만 그래도 생(生)의 집착은 몸이 쇠약해질수록 떨어지려 들지 않는다.
문자는 창제된 뒤로부터 사람의 자손에게 대대로 무거운 고뇌만을 첩첩히 쌓아주고 길로 쌓인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패한 인간의 비극만을 기록 했음에 지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식이란 결국 ‘니힐리즘’을 낳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은 어디까지든지 맹목적으로 우리의 본능을 채찍질한다.
연자매를 돌리는 눈 가린 당나귀 모양으로 하고한 날 고생바퀴를 뺑뺑 돌리다가 한 줌의 흙을 뒤집어쓰고 끝장을 내건만 그래도 살고 싶다! 성하게 튼튼하게 살고 싶다! 어쨌든 덮어놓고 오래 살아보고 싶다! 이 심경에 비관도 낙관도 용납될 수가 있으랴? 맹목은 어디까지든지 맹목일 뿐이요 이론을 붙여볼 수 없지 않은가.
더구나 근육염(筋肉炎)이나 종기쯤으로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개죽음도 못 되고 쥐죽음이다. 본때 없는 죽음이요 아무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는 죽음이다. 사람이란 죽어 없어지는 마당에까지도 허영심이 따라가는 모양이나 그렇다고 반드시 남녀가 부둥켜안고 정사를 해서 신문장에도 올라보고 염사 (艶史)를 천추에 전해야만 맛이 아니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나오는 어느 작가 모양으로 목을 매어 자살을 하려는데 목을 맬 노끈이 깔끄러워서 살에 닿으면 아플 듯하니까 기름칠을 살짝 하듯이 구태여 그 따위 방법으로 자살을 해서 무엇하랴.
그렇지만 우리 큰형 말마따나 사내 자식이 댕구알에 ○알이 터져서 죽을지언정 안방 아랫목에서 골골 콜록콜록하다가 턱을 까불고 싶지는 않다. 누가 나더러 너는 어떤 모양으로 죽었으면 만족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꼭 세 가지 방법을 말하고 싶다.
1. 병으로 죽을 팔자면 폐결핵이 만기된 여자와(얌전하다는 여성은 대부분 선천적으로 허위의 화신이니까) 그 미(美)에나 취해서 지독한 연애를 하다가 먼저 치맛자락에 피를 토하고 죽거나
2. 죽은 카루소의 성대를 빌릴 수 있다면 긴 영탄조를 정열을 쏟아서 창자 끝이 묻어나도록 뽑다가 기진역진해서 그 자리에서 거꾸러지든지
3.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대로 내버려두고 방관만 할 수 없는 이놈의 환경에 처해서 현실의 고통을 뼈끝마다 절절히 느끼다가 어느 행동의 힘만 붙잡을 것 같으면 아스팔트 바닥에다가 울분에 뛰는 심장을 터뜨려버릴 따름이다.
소위 온건한 사상을 파지(把持)하고 진지한 태도와 심오한 사색으로 인생의 길을 밟는다는 양반들이 얼마만한 법열을 시시로 느껴보며 얼마나 딴딴하게 천당지경을 닦고 있는지는 모르거니와 마지막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닥쳐 전후를 보살필 여유를 갖지 못한 우리는 다만 한 가지 취할 길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히 방황하는 것이 본시 인생의 정체라 하여 언제까지나 미적지근한 눈물만 흘리고 자빠진 것이랴? 절망과 자기(自棄)하는 끝에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알콜에다가 익은 고기 덩어리를 담가나 버릴까? 그러나 방금 분통이 터지려고 벌룽거리는 판에 눈물을 흘릴 겨를이 있을 수 없고 ‘불가사리’에게 어린애 코묻은 고린전 한 푼까지도 돌돌 말리고 보니 온 종일 돌아다니며 친구의 주머니를 뒤져도 5전 10전의 막걸리 한 잔 빨아볼 자금조차 변통해 볼 도리가 없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밖에 없는 것이다. 두개골이 산산 조각이 날 때까지 들부딪쳐 볼 뿐이다!
예술이란 다 무엇 말라 뒈진 것이며 이 판국에서 무슨 사업을 한다고 떠드니 이게 무슨 도깨비 장난이냐? 시대양심은 나에게 한 방울의 따근한 피를 부절(不絶)히 욕구한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핑계와 타협으로 앙탈을 하며 달겨들며 운명을 회피하려고 바둥바둥 애를 쓴다.
오, 나에게 강철과 같은 의지의 힘을 달라!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자살할 용기를 달라!
그러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기도라도 할 마음은 간절하나 나는 신앙의 대상을 찾을 수 없다. 오정 때 ─ 어머니가 오셨다. 며칠 동안 벼르고 오신 듯이 온갖 푸념과 갖은 넋두리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맞장구를 칠 수도 없으니 나는 예(例)에 의해서 입을 다물어 버릴 밖에. 근 20명 식구가 그나마 조상 덕택으로 몇 섬지기에서 긁어오는 것에다가 목줄을 매달고 파 먹기만 하는데 생산하는 자는 그 중에 한 사람도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문지방 하나를 격(隔)해서 성벽을 쌓고 사랑이 없는 남편과 아내는 그 육체만도 함께 딩굴지 못하여 자녀는 가정을 감방시(監房視)하고 벗어날 구멍만 찾느라고 헤비적 거리나 배가 고프니 한 술의 찬밥을 바라고 기어들지 않을 수 없다.
가족끼리 서로 얼굴을 대하기가 창피하고 제각기 풀어보지 못할 불평을 품고 있으니 서로 심성까지 악화해 갈 뿐이요 골육의 정이나마 보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정을 꾸밀 생의(生意)도 하지 말라! 조그마한 지옥 하나가 네 손으로 건설될 것이요. 자식을 내지르지 마라! 그것은 확실히 죄악일 뿐 미구에 네 자신이 저주의 과녁이 되리라 ― 나는 나에게 이런 훈계를 하기에 게으를 수 없다.
C·K·L·H…… 등 거의 수십 명의 친구네가 번갈아 문병을 와서 한참 떠들다가는 뿔뿔이 빠져가고 나 혼자 동그마니 남아 졸지에 신변이 고요해진다. 나는 그들에게 많은 위안을 받고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끝까지 버려주지 않은 우정을 자릿자릿 하게 느낄 때가 많고 새삼스러이 감사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해진다. 그 중에는 사람 없는 틈을 엿보아 발소리를 죽이고 와서 화병의 꽃을 갈아주고는 말없이 돌아서는 이성(異性)의 벗도 있고, 밤중만하여 전화로 가만히 병세를 물어주는 친절한 ○○도 있지만 그것은 극비에 붙여두는 일이니 인기(人機)를 누설할 자유가 없다고나 해둘까. 그러나 주위가 번거로울수록 내심은 더욱 고적을 파고들 뿐, 모든 뒤떠도는 것은 일시에 그칠 따름이요 고독에 떠는 마음만이 끝까지 내 차지요 유일한 내 밑천이다. 그림자와 같이 따라다니는 이 마음을 내 손으로 애무해 주어야겠다. 젖 떨어진 어린애처럼 주야로 보채는 내 마음의 고독을 달래고 타이르고 눈물로 어루만지면서 사는 날까지 살아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오후 여섯 시 ─ 석간이 왔다. 사회면을 펴들었다. 금자문자(金子文字)가 옥창(獄窓)의 아침 햇발을 받으며 목을 매고 조용히 자살을 하였다 한다! 송학선(宋學先)에게 사형언도! 충남지방 대홍수로 도궤(倒潰)와 유실된 가옥이 수 백에 익사자가 4,50명 ─ ○○사건으로 서울에 이감되는 R군의 자동차 위에 수갑 차고 앉은 사진, 그 해쓱한 얼굴에 떠도는 기막힌 미소 ─ 기생의 음독 ─ 여학생이 낙태를 시켜 불려다니고……별안간 전신의 피가 머리 속으로 끓어오른다. 두통이 심해서 터질 것 같다. 조금 있다가 팔봉 (八峰) 형이 와서, 우리와 한 자리에서 일을 하던 P군이 붙잡혀간 지 불과 수일에 소 같이 튼튼하던 사람이 다 죽게 되어서 입원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한다. 위복염으로 수술을 하였다 하나 ○가 지키고 서서 수술한 자리는 절대로 보지를 못하게 하는데 말도 못하고 송장이 다 되어 늘어져 있는 그 모양은 차마 볼 수 없더라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밤이 들어 조금 서늘한 바람이 머리를 식혀주나 죽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꽤 괴롭다. 아홉 시가 넘어서 장발객 군(長髮客君)이 왔다. 그와 그의 동지끼리 발기하였다는 우주정복주식회사 이야기가 나서 내게도 한 주 (株)를 권하는데 취지는 이름과 같이 우주를 정복하는 것이 목적이나 우선 사람의 새끼부터 절종(絶種)을 시킬 계획이라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미워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그들의 현세생활이 너무나 비참하고 그 꼴이 가엾어서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까 차라리 깡그리 몰살을 시켜서 사바(娑婆)의 고뇌를 잊어버리게 하자는 일종의 자선 사업이라고 기염을 토한다. 끝으로 내가 그 실행방법을 물으니까 멍하니 대답을 못하고 입을 봉해버린다.
자정이 넘어서 장발객은 어디론지 하룻밤 드샐 곳을 찾아가고 길거리에서는 아까부터 횡적(橫笛)을 부는 사람이 있다.
머리가 몹시 피곤하여 화서(華胥)의 나라에서나 몽유병자의 머리를 받아 편안히 쉬게 해줄는지?
─《문예시대》 제2 특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