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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유명한 명화 (그림) TOP 15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화(名畫) TOP 15 

 

CNN이 2019년에 고전 작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명화 15점을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일명 ‘CNN 10 most famous paintings in the world’입니다. 안타깝게 TOP 10에 들지 못한 나머지 5점도 뒤에 언급했는데, 대부분은 수긍이 가는 선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나머지 5점도 포함한 15개의 그림이며, 명화 밑에 소개된 사이트는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 공식 웹사이트이며 그림을 더 크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개의 그림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는 것이 좋지 않아서 위키백과로 연결했음)

 

 

모나리자
모나리자 (Mona Lisa)

 

 

The Mona Lisa

 

focus.louvre.fr

 

NO 1. 모나리자 (Mona Lisa)

 

원제 : Portrait of Lisa Gherardini, Wife of Francesco del Giocondo
작가 :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1452 - 1519
국적 : 이탈리아
연대 : 1503 - 1519 Florence, Italy
소장 :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
넓이 : 77 × 53 cm

모나리자(영어 : Mona Lisa) 또는 라 조콘다(이탈리아어: La Gioconda, 프랑스어: La Joconde)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로,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나"(mona)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이고, "리자"(Lisa)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이다.

​즉, 한국어로 하면 "리자 여사"라는 뜻이 된다. 모나리자의 다른 명칭인 "라 조콘다"는 한국어로 "조콘도(Giocondo)의 부인"이라는 뜻이 된다. 이 작품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여인을 그린 초상으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하여 엷은 안개가 덮인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02년에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조르조 바사리의 말에 의하면 미완성작으로 남겨둔 지 4년이 지난 후에서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150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작품의 의뢰를 수락한 것은 돈이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몇 달 뒤 베키오 궁을 장식할 프레스코 주문이 들어와서 이 그림은 주문자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에게 전달될 일이 없어졌고, 레오나르도가 평생 동안 자신이 갖고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초상화를 완성을 했고, 등받이 없는 1인용 안락의자에 독특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나리자와 이 풍경이 맺고 있는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후의-만찬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The Last Supper, 1495 - Leonardo da Vinci - WikiArt.org

‘The Last Supper’ was created in 1495 by Leonardo da Vinci in High Renaissance style. Find more prominent pieces of religious painting at Wikiart.org – best visual art database.

www.wikiart.org

 

NO 2.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

 

원제 : L'Ultima Cena (이탈리아어)
작가 :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1452 - 1519
국적 : 이탈리아
연대 : 1495. Milan, Italy
소장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넓이 : 460 × 880 cm

최후의 만찬(最後의 晚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으로 그린 그림으로써 이 작품은 가톨릭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마지막 날의 최후의 만찬의 정경을 나타나 있다. 그림은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 그려진 것으로, 1495년부터 제작에 착수하여, 1498년에 완성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 몇 안 되는 완성된 작품의 하나이지만, 가장 손상이 심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에 그려진 이 만찬의 그림은 기묘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이 장면에는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한복음 13장 21절)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표시하여 거기에 심한 동요가 일어난다.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자고 있던 요한이, 레오나르도의 화면에서는 성급하게 그리스도에게 다그쳐 묻는 베드로 쪽을 머리를 기울여 그것을 듣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같은 자리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는 유다는 앞으로 몸을 구부려, 머리는 다른 사도들보다 낮으며 그 표정도 어둡고 애매하다. 그리스도는 흥분한 주위에 휩싸이지도 않고 대오(大悟)한 사람처럼 평온하다. 열두 사람들의 제자들은 세 사람씩 네 패로 갈라져서 그의 몸짓과 동작에 의하여 서로 결합되어 있다.

 

 

별이-빛나는-밤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Vincent van Gogh. The Starry Night. Saint Rémy, June 1889 | MoMA

Vincent van Gogh. The Starry Night. Saint Rémy, June 1889. Oil on canvas. 29 x 36 1/4" (73.7 x 92.1 cm). Acquired through the Lillie P. Bliss Bequest (by exchange). Conservation was made possible by the Bank of America Art Conservation Project. 472.1941.

www.moma.org

 

NO 3.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

 

원제 : De sterrennacht
작가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
국적 : 네덜란드
연대 : 1889, Saint-Rémy-de-provence, France
소장 : 현대 미술관 (미국 뉴욕)
넓이 : 73.7 × 92.1 cm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정신병을 앓고 있을 당시의 고흐가 그린 작품이다. 1889년 상 레미의 정신병원에서 나와 기억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당시 고흐는 정신장애로 인한 고통을 떠올려 그림 속의 소용돌이로 묘사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고갱과 다툰 뒤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 이후 생레미의 요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고흐에게 밤하늘은 무한함을 표현하는 대상이었고, 이보다 먼저 제작된 아를의 《밤의 카페 테라스》나 《론 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에서도 별이 반짝이는 밤의 정경을 다루었다. 구글에서 2015년 설문조사 결과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화 1위에 뽑힌 적도 있다.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의 작업을 마쳤을 때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품이 소개될 당시 미술계의 반응도 변변찮았다. 비연속적이고 동적인 터치로 그려진 하늘은 굽이치는 두꺼운 붓놀림으로 사이프러스와 연결되고, 그 아래의 마을은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보여준다. 교회 첨탑은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를 연상시킨다.

그는 병실 밖으로 내다보이는 밤 풍경을 상상과 결합시켜 그렸는데, 이는 자연에 대한 반 고흐의 내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구현하고 있다. 수직으로 높이 뻗어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이프러스는 전통적으로 무덤이나 애도와 연관된 나무지만, 반 고흐는 죽음을 불길하게 보지 않았다.

 

 

절규
절규 (The scream)

 

 

The Scream, 1893 - Edvard Munch - WikiArt.org

‘The Scream’ was created in 1893 by Edvard Munch in Expressionism style. Find more prominent pieces of genre painting at Wikiart.org – best visual art database.

www.wikiart.org

 

NO 4. 절규 (The scream)

 

원제 : Skrik (노르웨이어)
작가 : 에드바르드 뭉크 (Edvard Munch)
국적 : 노르웨이
연대 : 1893. Oslo, Norway
소장 : 국립 박물관 (노르웨이 오슬로)
넓이 : 91 × 73.5 cm

작가가 생전에 붙인 제목은 <Schrei der Natur : 자연의 절규>이나 흔히 <The Scream>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유화 작품을 그린 뒤에 3점의 작품을 더 제작해 총 4점의 연작이 있다. 유화 작품은 오슬로 국립 미술관이 소장 중이며, 템페라 작품과 판화 작품은 오슬로 뭉크 미술관이,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은 오슬로 국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화 작품이다. 뭉크 박물관에서는 두 유화 중 하나 (1910년)와 파스텔화를 소장하고 있으며, 노르웨이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나머지 다른 유화 (1893년)를 소장하고 있다. 파스텔로 채색한 네 번째 작품은 노르웨이의 억만장자 피터 올슨이 소장하고 있다. 또한 뭉크는 석판화 (1895년)도 제작하였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 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가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뭉크가 1892년 1월에 남긴 글은 매우 유명하다.

 

 

게르니카
게르니카 (Guernica)

 

 

 

Pablo Picasso (Pablo Ruiz Picasso) - Guernica

Picasso, Pablo (Pablo Ruiz Picasso): Guernica

www.museoreinasofia.es

 

NO 5. 게르니카 (Guernica)

 

원제 : Et Picasso peint Guernica
작가 :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 - 1973
국적 : 스페인
연대 : 1937
소장 :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스페인 마드리드)
넓이 : 349 × 776 cm

게르니카(Guernica)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1937년 4월 26일 24대의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신문으로 보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50 ~ 1,600명 그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또한 부상당하였다.

거대한 벽화의 형상을 띤 이 그림은 사실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 전용관에 설치되도록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에게 의뢰한 작품이었다. 그림은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수년 전에 의뢰된 것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르니카의 참상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폭격의 공포와 피카소가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근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의 독재 체제에 대해 엘리트로서 느꼈던 비애도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림에는 부상당한 사람들과 절규하는 사람들 등이 그려져 있으며, 전쟁의 참상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키스
키스 (The Kiss)

 

 

 

Belvedere Museum Vienna | Upper Belvedere permanent collection

Austria on the Move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 Austro-Hungarian Empire witnessed dramatic transformations: railways and steamboats allowed for unprecedented mobility, industrial plants replaced cottage industries, and cities evolved into metropoli

www.belvedere.at

 

NO 6. 키스 (The Kiss)

 

원제 : Liebespaar (연인)
작가 : 쿠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 - 1918)
국적 : 오스트리아
연대 : 1907 - 1908
소장 : 상 벨베데레 박물관 (오스트리아 비엔나)
넓이 : 180 × 180 cm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 1907년 작품이다. 정사각형으로 클림트가 금을 얇게 붙여 완성한 그림으로, 그 기술의 유래에 아버지의 영향이 있다. 두 사람의 경계가 애매모호한데, 이때는 옷의 무늬를 보면 된다. 남자는 네모, 여자는 동그라미로 상징적으로 차이를 나타냈다. 워낙에 유명해서 레플리카는 사방에서 볼 수 있지만 진품은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 (o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에 있다.

한쪽 벽면을 홀로 차지하고 있으며 CCTV가 굽어 살피고, 매의 눈을 한 경비원들이 도난은커녕 사진 찍는 것도 감시하고 있다. 그림이 걸려있는 벽면은 사방을 검게 해두어서 그림이 돋보이게 해 놓았다. 덕분에 이 그림이 더욱 빛나게 느껴지며, 실제로 클림트는 그림에 금색 물감뿐만 아니라 진짜 금을 사용했다고 한다. 금세공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그림을 마주하면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는데 180 x 180 cm의 크기에 번쩍번쩍한 색감이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감정의 울렁임이 상당하다. 또한 그림이 약간 높이 걸려있어서 올려다봐야 하는데, 이 그림 앞에만 사람들이 바글거려서 이렇게 해놓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진주-귀걸이를-한-소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The Girl With a Pearl Earring)

 

 

Johannes Vermeer Meisje met de parel

Dit schilderij vind je in het Mauritshuis in Den Haag. Wil je meer weten over dit werk? Bezoek onze website.

www.mauritshuis.nl

 

NO 7.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The Girl With a Pearl Earring)

 

원제 : Het Meisje met de Parel (네달란드어)
작가 :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 - 1675
국적 : 네덜란드
연대 : 1665
소장 : 모리츠 후이스 (네덜란드 헤이그)
넓이 : 44.5 × 39 cm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으로,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소녀가 걸고 있는 진주 귀고리를 그림의 초점으로 사용하였다. 헤이그의 마우리츠 호이스에 전시되어 있으며, "북유럽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페르메르 특유의 미묘한 빛의 표현, 단순하지만 조화로운 구성, 선명한 색채가 특징이다.

빛의 효과를 사용하여 두 번 이상의 붓 터치로 그려진 진주는 왼쪽 윗부분이 밝게 빛나고 있으며, 아랫부분은 하얀 옷깃을 반사하여 부드럽게 비추면서 맑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그림에서 머리에 터번을 두른 진주 귀고리의 소녀는 누군가를 보기 위해서 왼쪽 어깨를 틀어 고개를 돌리고 있다. 큰 눈동자와 관능적인 입술, 특유의 시선과 표정이 보는 사람에게 비밀스러움이 어우러진 신비감을 주고 있다.

 

 

비너스의-탄생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The birth of Venus by Botticelli | Artworks | Uffizi Galleries

Known as the “Birth of Venus”, the composition actually shows the goddess of love and beauty arriving on land, on the island of Cyprus, born of the sea spray and blown there by the winds, Zephyr and, perhaps, Aura.

www.uffizi.it

 

NO 8.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원제 : Nascita di venere (이탈리아어)
작가 :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 - 1510
국적 : 이탈리아
연대 : 1483 - 1485
소장 : 우피치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
넓이 : 172.5 × 278.9 cm

<비너스의 탄생>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적인 그림 가운데 하나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로마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비너스가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바다에서 탄생하면서 해안에 상륙하는 내용을 묘사한 그림이다.

고전적인 여신 비너스는 물 위에 떠 있는 조가비에서 나온 채로 정신적인 사랑의 상징인 제피로스(서풍)가 부는 바람을 타고 해안에 상륙하고 있으며 계절의 여신인 호라이의 한 명이 꽃에 덮인 외투를 비너스에게 건네주고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엄격한 고전적 사실주의와 차이를 두고 있다. 비너스의 목은 비현실적으로 길고 왼쪽 어깨의 기울기는 해부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각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작품의 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라스-메니나스
라스 메니나스 (Las Meninas)

 

 

Las meninas - Colección - Museo Nacional del Prado

Es una de las obras de mayor tamaño de Velázquez y en la que puso un mayor empeño para crear una composición a la vez compleja y creíble, que transmitiera la sensación de vida y realidad, y al mismo tiempo encerrara una densa red de significados. El

www.museodelprado.es

 

NO 9. 시녀들 (Las Meninas)

 

원제 : 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
작가 :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zquez) 1599 - 1660
국적 : 스페인
연대 : 1656
소장 : 프라도 박물관 (스페인 마드리드)
넓이 : 318 × 276 cm

시녀들(Las Meninas, The Maids of Honour)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화풍은 어느 것이 실재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물 사이의 관계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몇몇 인물들은 캔버스 밖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다른 몇몇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작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루카 지오다노는 이 작품을 가리켜 '회화의 신학'이라고 표현했으며, 19세기 토마스 로런스 경은 이 작품을 '예술의 철학'이라고 일컬었다.

최근에는 "회화로서 무엇을 나타낼 수 있는가를 자신감 있고 치밀하게 표현한 벨라스케스의 걸작이며, 이젤을 사용한 회화 방식이 가진 가능성을 가장 철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아담의-창조
아담의 창조 (The Creation of Adam)

 

 

Sistine Chapel Ceiling: Creation of Adam, 1510 - Michelangelo - WikiArt.org

‘Sistine Chapel Ceiling: Creation of Adam’ was created in 1510 by Michelangelo in High Renaissance style. Find more prominent pieces of religious painting at Wikiart.org – best visual art database.

www.wikiart.org

 

NO 10. 아담의 창조 (The Creation of Adam)

 

원제 : Creazione di Adamo
작가 :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 - 1564
국적 : 이탈리아
연대 : 1508 - 1512
소장 :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넓이 : 280 × 570 cm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려진 벽화의 하나이다. 하느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창세기 속 성경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예배당 입구에서 출발하여 구약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간 지점에 그려져 있는데, 이는 인간과 신이 함께 표현되는 양식을 과감히 창조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하나님의 창조적 힘과 인간이 만들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을 뛰어나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아메리칸-고딕
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

 

 

American Gothic |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Grant Wood, 1930

www.artic.edu

 

NO 11. 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

 

작가 : 그랜트 우드 (Grant Wood) 1891 - 1942
국적 : 미국
연대 : 1930년
소장 : 시카고 미술관 (미국 시카고)
넓이 : 62.4 x 74.3 cm

아메리칸 고딕은 1930년 그랜트 우드가 그린 시카고 미술관의 컬렉션 회화이다. 우드는 아이오와주 엘던에 있는 미국 고딕 양식의 집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런 집에 살만한 부류의 사람에 대한 환상"을 표현하였다. 그림 속 인물은 농부인 아버지와 딸이지만, 종종 부부로 오해한다. 건축 양식의 명칭을 그대로 그림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그림 속 인물은 우드의 여동생인 낸 우드 그레이엄과 남매의 치과 주치의이던 바이런 맥키비를 모델로 한 것이다. 그림 속 여성은 20세기 초반의 아메리카나 양식을 연상케 하는 식민지 시대 앞치마를 입고 있으며, 남자는 멜빵바지 작업복 위로 슈트 재킷을 입고 쇠스랑을 들고 있다.

집 현관에 있는 식물은 미국에서 흔히 "시어미 혀"(mother-in-law's tongue)로 불리는 산세비에리아 속의 식물 드라캐나 트리파시아타와 베고니아속의 혼합재배종 "비프스테이크"이다. 이 식물들은 우드가 1929년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 《식물을 지닌 여인》에도 등장한다.


아메리칸 고딕은 20세기 미국 미술에서 가장 친숙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이며 미국 대중문화에서 자주 패러디되곤 한다.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이 그림은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과 런던의 왕립 예술원에 전시되었다. 최초의 해외 전시였다.

 

 

모네의-그림-수련
수련 (Water Lilies) 시리즈 (약 250점)

 

 

Les Nymphéas de Claude Monet | Musée de l'Orangerie

Réfugié à Londres durant la guerre franco-prussienne de 1870, Monet s’établit à Argenteuil à son retour en France. Claude Monet est connu comme l’un des peintres les plus célèbres du mouvement impressionniste qui tire son nom de l’une de ses

www.musee-orangerie.fr

 

NO 12. 수련 (Water Lilies) 시리즈 (약 250점)

 

작가 :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 - 1920
국적 : 프랑스
연대 : 1903년
소장 : 앙드레 말로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프랑스 파리)
넓이 : 다양함.

1890년에 지베르니에 집을 마련하고, 그의 유명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클로드 모네의 작품 양상은 변화한다. 그는 정원을 만들면서 새로 판 연못에 수련과 수생 식물, 아이리스 등을 심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일본식 다리를 세우고, 정원 곳곳에 벚나무와 버드나무, 각종 희귀한 꽃을 심어 재배했다. 여섯 명의 정원사를 두고도 몸소 정원 일을 할 정도로 모네는 정원에 애착을 보였고, 이런 열정이 그가 ‘수련’ 연작을 제작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모네는 이곳에서 마지막 연작인 ‘수련’ 연작을 제작했는데 그 수가 무려 250여 점에 달한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과 대기의 변화에 따른 인상을 포착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에 대한 강렬한 관심도 지속되지만, 그는 회화적 공간에 대한 연구에도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련’ 연작은 이런 화가의 관심을 반영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병인 백내장으로 시력이 악화되어 점차 추상화 ‧ 단순화 경향이 두드러지는 이 시기에 모네는 회화 공간에서 추상적 탐색을 시작한 듯하다. 폴 세잔은 "모네가 가진 것은 오직 눈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라고 그를 극찬하기도 했다.

 

 

 

기억의-지속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Salvador Dalí.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 MoMA

Salvador Dalí.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Oil on canvas. 9 1/2 x 13" (24.1 x 33 cm). Given anonymously. 162.1934. © 2022 Salvador Dalí, Gala-Salvador Dalí Foundatio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ainting and Sculpture

www.moma.org

 

NO 13.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원제 : La persistencia de la memoria
작가 :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 - 1989
국적 : 스페인
연대 : 1931년
소장 : 뉴욕 현대 미술관 (미국 뉴욕)
넓이 : 24.1 x 33 cm

기억의 지속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다. 특별히 시계의 모습이 특이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녹아내리는 시계(Melting Clocks), 늘어진 시계(Droopy Clocks) 등으로도 널리 알려져 왔다. 이 작품은 당시 달리가 생각했던 초현실주의에 입각하여 부드러움과 견고함의 조합을 이용하였다. 때문에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듯한 시계 모양이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달리의 작품이 프로이트의 학설에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림의 형상은 1945년 원자 폭탄 투하 이후 과학적인 면모를 다루는 경향으로 바뀌었다.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의 왜곡을 묘사한 것 같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나무는 칼처럼 뾰족한 사물을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그림의 다른 요소와 똑같은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의미에서는 열망과 두려움 그리고 한편으로는 테러나 전쟁에 대한 공포가 나타나 있다. 한편 오른쪽 자락에 있는 황금색의 절벽은 달리의 모국인 스페인을 상징한다.

처음에 그의 작품에 파리의 피에르 콜리에 갤러리(Galerie Pierre Colle)에 1931년 최초로 전시되었다가 뉴욕의 갤러리스트였던 줄리엔 레비가 250불을 주고 사 왔다. 1933년 그림은 스텐리 비 레소르 부인(Mrs. Stanley B Resor)에 팔렸고 그녀는 익명으로 그림을 1934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야경
야경(夜警) (The Nightwatch)

 

 

nightwatch-Verzameld werk van Judith Williams - Alle Rijksstudio's - Rijksstudio - Rijks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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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4. 야경(夜警) (The Nightwatch)

 

원제 : De Nachtwacht
작가 : 렘브란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 - 1669
국적 : 네덜란드
연대 : 1642년
소장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넓이 : 363 x 437 cm

야경(夜警) 또는 야간순찰(夜間巡察)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의 작품이다. 본래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방위대(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제목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

1640년 무렵 렘브란트는 국민병 대장인 프란스 반닝 코크로부터 자신의 부대를 묘사한 그림을 의뢰받고, 낮에 성벽에서 훈련하기 위해 무기고를 떠나는 병사들의 모습을 그렸다. 낮에 말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미 문을 나선 병사들은 햇빛을 받아 환히 비치고 있는 반면 뒤쪽 문간에 서 있는 병사들의 모습은 어둡게 묘사되어 있다. 이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렘브란트가 의도한 그림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두 가지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첫째 비밀은 그림의 본래 모습인데, 4.5미터 × 5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그림을 본 군인들은 국민병 본부 벽을 장식하기에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군인다운 결단으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왼쪽 부분을 잘라 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렘브란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상사에게는 알렸을 테지만. 그러니까 이 그림은 본래 모습이 아니다.

둘째 비밀은 바로 제목과 관련된 것이다. 그림이 걸린 장소가 부대였다는 것은 그림이 제대로 대우받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임을 동시에 알려 주기도 한다. 그 방에는 엄청난 그을음을 내는 이탄 난로가 있었고, 결국 이 그림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렇게 해서 한 세기가 지나자 사람들은 이 그림이 야밤을 틈타 이루어지는 기습 장면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제목은 자연스럽게 '야경'이 되었다.

그러니 이 코미디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일본인들이 〈운명〉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극적인 셈이다. 그래도 운명이란 제목은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라고 했다는 베토벤의 실토에서 힌트를 얻어 붙여졌으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이 그림은 낮이 배경인데 야경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니···

 

 

쾌락의-정원
쾌락의 정원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Tríptico del Jardín de las delicias - Colección - Museo Nacional del Prado

El Jardín de las delicias es la creación más compleja y enigmática del Bosco. Para Falkenburg, el tema general del Jardín de las delicias es el destino de la humanidad, el mismo que el del Carro de heno (P02052), aunque el Bosco lo visualice de distin

www.museodelprado.es

 

NO 15. 쾌락의 정원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작가 : 히로니뮈스 보스 (Hieronymus Bosch) 1450 - 1516
국적 : 네덜란드
연대 : 1500년경
소장 :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
넓이 : 195 Ⅹ 220 cm

세 폭 제단화 형식의 이 작품은 제단화의 두 날개를 열면 그 내부에 세 가지 장면으로 구성된 그림을 볼 수 있다. 세 장면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패널에는 에덴의 동산에서 하느님이 이브를 아담에게 대면시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조류인지 파충류인지 정확히 종류를 판명할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들이 하느님의 또 다른 피조물로서 함께 어우러져 섞여있다.

가운데 패널에는 역시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동물들과 함께 성행위에 몰두한 나체의 인물들, 지나치게 큰 과일과 여러 물체가 혼합된 기괴한 구조물이 거대한 파노라마 속에 담겨 있다. 오른쪽 패널은 지옥의 광경으로 다른 패널들과 달리 배경색이 어두우며 여러 피조물들이 잘리고, 찔리고, 떨어지는 등 지옥의 고통이 나타나 있다.

<쾌락의 정원>은 중세부터 이어지는 서양 종교화의 전형적인 ‘세폭 제단화(Triptych)’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이 작품이 실제 제단화로 쓰일 목적으로 제작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보슈가 실제 제단화의 용도로 제작한 다른 두 제단화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1500년경)과 <건초 수레(The Haywain)>(1510년 이후)와 비교해보면, 두 작품과 달리 <쾌락의 정원> 가운데 패널에는 하느님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해당하는 이 부분에 보슈는 성스러운 종교적 장면 대신 자유롭게 행동하며 다양한 성행위에 몰두한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가운데 패널과 오른쪽 패널에서 드러나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교회나 수도원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아마도 일반인의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보슈의 그림은 너무 기이하고 독특하여 이후의 다양한 화가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