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짓는 이에게 ─
동화, 동요, 소품문 세 가지 작법을 90 줄에 쓰라는 것은 도저히 못할 말이니, 동화, 동요를 짓는 이의 주의할 것 몇 가지만 간단히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90줄에 될는지…….
동(童)은 아(兒)이란 동(童)이요, 화(話)는 설화(說話)의 화(話)인즉, 결국 동화(童話)는 아동 설화(兒童說話)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동 이외의 사람이 많이 읽거나, 듣거나 하는 경우에라도 동화 그것은 아동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므로, 동화가 가져야 할 첫째 요건은 아동들이 잘 알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것이나, 또 어린이 사이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동화를 소설 쓰듯 하느라고 공연한 노력을 많이 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한 것은 동화에 있어서는 아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아동의 머리를 현란케 하는 폐가 있기 쉽습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여름 일기의 더운 것을 말할 때에 온도 몇 십도나 되게 덥다고 하면 모릅니다.
덥다 덥다 못하여 옷을 벗고 물로 뛰어 들어가도 그래도 덥다고 하면, 아동은 더위를 짐작합니다. 의주(義州)에서 부산까지 2천리나 되니까, 굉장히 멀다 하면 아동은 그것을 짐작 못합니다. 걸음 잘 걷는 사람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쉬지 않고 걸어서 스무날 밤, 스무날 낮을 가도 다 가지 못한다 하여야 그 굉장히 먼 것을 짐작합니다.
그리고, 또 동화를 쓰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리 이상하게 길게 하더라도 그것을 읽거나 듣는 아동은 그 중에서 자기가 알 수 있는 것뿐만을 추려갑니다. 아동을 많이 접해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길다란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중에 다시 한 번 물어 보십시오. 군데군데 뛰어가면서 자기가 아는것만 골라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활동 사진을 보아도 다른 사실은 전연 모르고 개가 자동차를 쫓아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거나, 싸움하는 것밖에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화 작가나 구연자(口演者)가 아동이 알지 못할 말, 아동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을 쓴다 하면, 쓸수록 노력만 허비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동화가 가질 요건은 둘째, 아동에게 유열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동의 마음에 기쁨과 유쾌한 흥을 주는 것이 동화의 생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교육적 가치 문제는 셋째, 넷째 문제이고, 첫째, 기쁨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육적 의미를 가졌을 뿐이고, 아주 흥미가 없으면, 그것은 동화가 아니고, 이언(俚諺)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러한 교육적 의미가 없어도, 동화는 될 수 있지만, 아무러한 유열도 주지 못하고는 동화가 되기 어렵습니다.
끝으로 셋째, 교육적 의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이렇게 치겠는데, 교육적 의미라는 것을 이야기하기는 장황하겠으니까 여기에는 그만두겠습니다. 동화에 관하여도 간단하게나마도 다 쓰지 못하였으니까 약속한 동요는 전혀 못 쓰게 되었습니다.
〈동아 일보, 1925년 1월 1일 목요일, 제1787호 제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