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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 봄철에 가장 사랑하는 꽃 - 방정환

나는 이런 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며 좋아합니다.

 

곱게 피는 꽃이면 모두 좋지만, 봄에 피는 꽃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히아신스와 복사꽃입니다. 산이나 들에 산보를 가거나, 공원이나 동물원 잔디밭에 가서, 노곤하게 누워 있고 싶게 햇볕이 좋은 봄날, 조용한 동리를 지나다가 길갓집 울타리 안에 복사꽃 몇 가지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세상에 그보다 더 아담하고 귀여운 것은 없어 보입니다. 마치 시집가게 된 처녀가 분홍빛 새 치마를 입고, 뒤꼍에 나서서 봄볕을 쪼이는 것 같다 할까요.

 

그래 그 집에 좋은 처녀라도 있는 것 같고 그런 집이 두어 집 있으면, 그 동리가 온통 깨끗하고 조촐한 좋은 동리같이 생각됩니다. 지금은 봄철의 꽃 구경! 하면 으레 벚꽃을 생각하지만 복사꽃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우선 꽃빛이 곱고, 좋아서 먼 산에 몇 나무 핀 것만 보아도 온 산이 방긋이 웃는 것 같습니다. 과목밭 복사꽃을 찾아가면 잎 하나 섞이지 않은 붉은 꽃이 한편으로 낙화지고, 또 한편으로 새로 피고하여 땅도 꽃으로 덮이고, 하늘도 꽃에 가리어, 그야말로 몸이 꽃 속에 든 것 같아서 나는 생각만 하여도 지금이라도 뛰어가서 뒹굴고 싶습니다.

 

나뭇가지의 맵시가, 벚나무는 보기 좋게 모양 좋게 뻗어 있지만 복사가지는 아무 모양 없이 된 대로 생긴 대로 싱겁게 뻣뻣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사나무의 남달리 귀여운 점입니다. 벚꽃 가지의 맵시가 기생이나 여광대의 맵시라 하면 복사 가지는 시골집에서 곱게 길리운 순실한 처녀의 맵시입니다. 울타리에서 보는 복사꽃, 떡지어 핀 복사꽃도 이야기하였지마는, 제일 복사꽃이 복사꽃답게 사랑스럽기는 시골집 보리밭 둔덕이나, 우물가 언덕이나, 울타리 바깥, 보잘것없은 둔덕에 외따로 한 나무 뻣뻣한 버성긴 가지에 환하게 피어 있는 것입니다.

 

흙내 나는 꽃, 시골집 울타리를 생각케 하는 꽃, 순실한 시골 소녀같이 사랑스러운 복사꽃! 나는 이 사랑스러운 꽃이 이 봄에도 어서 피어 주기를 지금부터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린이》 4권 4호, 1926년 4월호, 방정환〉